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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으로 본 옥로주





옥로주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소주가 제조되기 시작한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고려시대를 거쳐 이조 말기에 성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북쪽 지방에서는 주로 옥수수나 수수 등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하였으며 남쪽 지방에서는 쌀이나 보리를 사용하여 가양주 형태로 제조하여 왔다.
소주의 제조에 관한 문헌에 의하면 이조 말기에 서울의 만리현에 살던 이성년이라는 사람이 동판을 이용하여 동고리를 일년에 약 30개 정도씩 제작하여 소주를 제조하려는 사람들에게 팔아왔다는 기록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게 소주의 제조가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어 차츰 남쪽으로 전래되면서 유씨 가문에서도 이 무렵에 소주를 제조하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체로 그 연대를 1880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옥로주는 조선 23대 순조(재위 1800-1834) 시대,  충남 서산 유씨 가문의 유성근과 부인 밀양 손씨가 최초로 가양주 형태의 옥로주를  빚었으며, 이후 유양기 옹의 부친인 유행용(1852-1932)이  전북 남원 산동에서 쌀과 잡곡을 원료로 하여 소주를 빚고, 토고리로 증류하여 옥로주를 제조하였다.  1918년 유행용은 경남 하동군 화계면 탑리 708번지로 이사하면서 이때 집 주변에 율무를 많이 재배하여 쌀과 율무를 주원료로 하였으며, 누룩을 만들 때도 밀과 율무를 혼합하고 약쑥을 첨가하였다. 
1926년경부터 유행용 부부는 둘째 아들 유양기에게 옥로주 빚는 방법을 전수하며 빚어낸 옥로주를 화개장터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때 옥로주를 시음한 사람들은 술 향기가 독특하고 술 맛이 부드러워 조금만 마셔도 빨리 취하고, 숙취가 없어 당시 많은 애주가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어 옥로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자 생산량을 증가했으나, 이 무렵 일제 제제가 극심하여 숨어서 그 맥을 이어오게 된다.
옥로주 명칭은 소주를 내릴 때, 고주리 깃대에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붙여졌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1947년 초 가양주인 옥로주가 30% 소주로 생산하게 되었고, 상표를 '옥로주' 라고 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양조환경 변화로 인해 옥로주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한 동안 유씨가문의 가양주 형태로만 명맥을 유지하다가 유양기 옹의 첫째 딸 유민자에게 기법을 전수하고, 연구조사가 이루어지며 1993년 유양기 옹은 군포시 당정동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기능 보유자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유민자가 옥로주 기능보유자로 이어받아 경기도 용인에서 양산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유민자(현 명예보유자) 의 장남 정재식이 전수받아 안산시 대부도에서 옥로주 명맥을 6대째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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